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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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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2008년 12월호

누가 『판타스틱』을 모함했나

페이퍼하우스의 잡지준비팀을 맡은 박상준님이 “SF와 판타지 중심의 장르문화 월간지가 탄생한다”는 소식을 알렸던 것이 2006년 11월 7일이었습니다.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장르문화 월간지 준비팀이 설문조사를 하면서 창간준비호를 언급했고, 기대에 찬 저는 언제 받아볼지도 모르는 창간준비호를 기다리면서 설문조사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나오게 될지 엎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잡지를 놓고 어느 장르까지 다뤄야 할지 설전을 벌이기도 했고, 매니아 친화적인 제호 공모 이벤트나 200자 초단편 스토리 이벤트 같은 것을 하기도 했으며, 드문드문 박상준님의 잡지 준비 소식이 카페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월 10일에 잠정적으로 ‘판타스틱Fantastique’이라는 잡지 이름이 정해졌으며, 창간준비호가 2월, 창간호가 3월에 나온다는 예정이 잡혔습니다. 140쪽 분량의, 무비위크 판형으로 가제본판 준비호가 공개된 것이 2월 28일이었고 그때쯤 여기저기서 인터뷰 기사들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여전히 창간호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3월 말에서 4월 말로 예정일이 늦춰졌고, 결국 창간준비호 없이 5월호가 창간호로 나왔습니다. 가격은 『무비위크』의 7배인 6,900원, 판형은 묵직한 B5, 분량 280페이지.

그리고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던 장르문화 월간지는 탄생 소식을 알린지 꼭 2년 후에 휴간을 단행하게 됩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 『판타스틱』 홈페이지(fantastique.co.kr). 11월호 휴간 이후 폐간 루머에 대해, 다행히도 사실이 아님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잡지, 보이지 않는 필진들

일단, 가시적인 변화를 따져봅시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편집부, 마케팅팀, 총무팀의 각 한 명씩을 제외하면 모든 인원이 교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편집장이 바뀌고 편집위원회가 생긴 것도 큰 변화이지요. 초기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을 다루는 문화교양지’를 표방했던 잡지는 금세 로맨스 특집이나 무협 특집, 스릴러 특집 등을 끼워넣으면서 상당히 많은 숫자의 장르들을 다루기 시작하였고, 20페이지 남짓이었던 컬러 페이지 수는 70페이지를 훌쩍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잡지는 뚜렷하지 않은, 무언가 두루뭉술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SF와 판타지가 종종 묶여 있고 외국의 잡지에서도 SF와 판타지를 동시에 다루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장르가 가진 특징들과 독자층, 장르가 가진 관심의 방향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르문화 월간지’인 『판타스틱』은 점점 다뤄야 할 것과 다룰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아직도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듯합니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 잡지에서 SFㆍ판타지ㆍ미스터리ㆍ호러ㆍ무협ㆍ로맨스를 동시에 다루고 이들 장르의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가 과연 ‘모든’ SF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일까요? 특정한 한 장르를 탐독해온 독자에게 『판타스틱』의 모습은 ‘계륵’에 가깝습니다. 어떤 한 분야로 특화되어 만족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에 타는 목마름을 해소하기에는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작년과 올해 들어 장르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상황도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열악한 환경을 자랑했던 SF만 해도 한 달에 한두 권 나오던 번역 SF가 한 해에 수십 권씩 출간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읽을거리의 양’이 문제가 되는 시기는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읽을거리의 질’을 따지는 한가로운(?) 상황이 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장르 끼워팔기식 마케팅으로는 더 이상 독자에게 어필하기 어렵습니다. 기존에 장르를 읽던 독자들은 뚜렷한 선호도와 취향이 있고, 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다루는 장르의 폭을 좁히는 작업을 하거나 잡지 전반에 걸쳐 장르의 벽을 쉽게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기사는 좀 나은 편이지만 소설의 경우 ‘장르명이 어떤 책 앞에 붙으면서 모종의 심리적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러한 장벽이 낮은 소설들을 중심으로 하고 이해를 돕는 기사나 해설, 인터뷰가 붙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판타스틱』의 탄생 초기부터 주축이 되었고 꾸준히 활동하는 번역, 창작 필진이 존재하는 SF와 판타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호러가 번갈아가면서 조금씩 다뤄지고, 그 외의 장르를 특별 형태로 다루는 것입니다.

 

 

아이덴티티

여태까지의 문제는, 한 마디로 말해 일관성이 없고 컨셉이 없다는 것입니다. 월간지라는 형식이라고는 하나 『판타스틱』은 여태껏 너무 많은 장르를 너무 정신없이 다뤄왔습니다. 봄에는 로맨스소설과 괴수영화를 기사로 다루면서 호러와 미스터리 소설을 넣더니, 여름에는 미스터리와 호러, 스릴러를 기사로 다루고 신간과 영화를 정리합니다. 지난 8월호는 아예 소설의 절반이 호러 단편이었죠. 판타지와 SF를 기대하고 책을 집어든 독자가 관대하게 미스터리와 호러에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상기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 수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독자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너무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 하는 상황이죠. 특집 기사나 여타 기사들은 예전부터 다른 장르들을 다뤄왔지만 소설은 기본적으로 SF와 판타지가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차지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더 이상 『판타스틱』에서 다루는 장르의 비율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일관성 없이 한 권에 많은 장르를 한꺼번에 다루면서 잡지의 정체성도 그저 ‘장르’라는 추상적이고 일관성 없는 그 무엇으로만 설명 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각 장르의 독자층이 얼마나 겹치는지, 『판타스틱』을 보는 독자들의 호기심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정돈하여 보여주지 못한 채 그때그때 작성한 기사와 투고된 소설로만 꾸려나가는 형태가 지속되면서 제가 느끼는 혼란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단적인 예로, 특집 기사와 연재소설ㆍ만화만 있을 뿐 연재기사와 특집 소설ㆍ만화가 없는 것은 그만큼 기사에 들이는 공력이 적다는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같은 문제를 계속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예측을 하게 만듭니다.

만약 『판타스틱』이 노리는 것이 기존 독자층이 아닌 새로운 독자층의 형성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판타스틱』의 컨텐트들은 어중간합니다. 장르에 문외한인 독자가 보기에 『판타스틱』의 기사와 소설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고, 이를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줄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해주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너무 많은 장르의 너무 많은 정보들과 너무 다양한 특징의 소설들은, 처음 장르를 접하는 독자에게 장르의 다양성을 소개해주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잡지에 있어 중요한 정기구독 독자층을 끌어 모으고 꾸준한 구독으로 끌어들이기엔 지나칠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연말특대호는 여러 측면에서 초심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잡지의 중심이었던 SF와 판타지의 비율이 상승했고, 소설의 분량은 총 320페이지 중 거의 200페이지에 달합니다. 여전히 문제점은 존재하지만 Trend는 군살을 뺐고, Essay는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으며, 인터뷰는 3개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매력을 가지기엔, 제 생각으로는 좀 부족한 듯싶습니다.

 

거절하지 않았으면 하는 제안

그래서, 저는 이 지면을 통해 『판타스틱』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자유기고가든 객원필자든 동원할 수 있는 필진을 지금 활용하는 필진 수의 2배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12월호는 물론 특별한 경우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몇 명의 기자와 소설가, 번역가들이 혹사당하며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12월호에 실린 번역소설 5편 중 과반수인 3편을 이수현님 혼자 도맡은 것만 봐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작가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면 번역가라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비용과 가격상승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지금 떠나가고 있을지 모르는 독자들입니다. 『판타스틱』이 맡은 역할은 그저 원래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필진들을 활용하여 잡지를 묶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르 소설가와 장르 번역가, 장르 기자가 탄생할 토양이 되는 역할도 맡아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기사의 질, 장르의 다양성, 잡지의 완성도를 동시에 잡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필진만으로는 지금처럼 그때그때 작성된 기사와 소설로 잡지를 꾸려나가는 데에만 급급한 상황이 계속될 뿐입니다.

군살을 더 빼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한 차례 휴간을 한 것은 독자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건실한 이미지가 한 번 타격을 입은 이상, 당장 내년의 『판타스틱』 정기구독이 얼마나 많은 신규독자를 끌어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연말특대호는 가격을 8,500원으로 올렸는데, 이는 체감적인 면에서 상당한 가격상승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종이 값의 상승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독자들은 30페이지 늘어났다고 1,600원이나 올랐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이를 부담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지 않을 법한 페이지를 과감하게 빼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구색 맞추기라는 이유로, 원래 할당된 지면이라는 이유로 SpecialㆍBookㆍMovieㆍTrend 등을 지금처럼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기사들은 단가가 높은 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더욱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독자의 눈을 끌지 못할 특집기사, 『판타스틱』의 다른 컨텐트들과 융합되지 못하면서 독자의 흥미도 끌지 못하는 Trend 기사, 다른 잡지와 차별화되지 못하면서 분량도 적어 그저 ‘소개’ 정도의 역할에만 머무는 BookㆍMovie 기사들 중 과감하게 쳐낼 것은 쳐내고 살릴 것은 살려야 합니다. 저는 차라리 신간과 신작영화들을 News에서 짧게 다루고 그 중에서 화제작을 뽑아 현재의 Essay 형식으로 다루는 것이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에는 더 적합하리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현재까지의 BookㆍMovie 기사들이 영화전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포맷으로 영화전문지보다 덜 전문화된 필자가 썼던 만큼 만족도가 낮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장르문화 월간지’라면 패션지에서 볼 수 있을 Book, Movie 기사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판타스틱』이라는 잡지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데, 장르‘문학’이 중심인 월간지라면 Book이 아닌 ‘Criticism’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맞으며, 장르‘문화’ 월간지로 나아가려면 ‘장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Essay(수필만이 아닌)와 정보제공을 위한 기사가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소설이 전체 지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잡지이지만, 결국 나머지는 기사로 채워집니다. 잡지의 역할이 단순히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쳐도, 어쨌든 창작과 비평은 당연히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평이나 논평을 하지 못하고 소개 정도로 그치고 마는 『판타스틱』의 Book-Movie 기사들과, 장르문화와 연결성이 떨어지고 문화에 대한 시각보다는 ‘유희’와 소개에 그치고 마는 Trend 기사들을 혁신하고, ‘부담 없는 읽을거리이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장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사’와 ‘심도 있고 날카로운 분석과 평을 보여주면서 장르 초보에게도 친절한 에세이’로 이원화하여 대중화와 전문화의 양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판타스틱 장르백서를 위하여

『판타스틱』 외에 ‘장르’를 다루는 잡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독점시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판타스틱』의 휴간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점인 만큼 이 시장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어느 쪽이 더 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난관에 부딪히기가 쉬운 상황입니다. 제가 『판타스틱』에 바라는 점은 장르문화 월간지로서 다양한 장르를 접하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넓은 저변을 지닌 미스터리ㆍ스릴러와 이제 막 확장해나가는 호러, 튼튼한 팬덤을 유지해온 무협ㆍ로맨스 등의 장르는 『판타스틱』에게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를 그때그때 조금씩 다루며 넘어가는 것으로는 장르문화의 ‘겉’을 ‘소개’하는 것에 그칠 뿐, 장르문화의 ‘속’을, 그 매력과 가능성을 제대로 다 보여주는 데에는 부족합니다. 저는 『판타스틱』이 더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더 훌륭한 장르의 ‘속’ 안을 ‘판타스틱’하게 펼쳐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이러한 장르와 장르문화가 있었다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우리가 이러한 장르와 장르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장르적으로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현재’의 ‘창’으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20권도 채우지 못한 월간지가 그 가능성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서사가 있는 상상’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 보기에, 저는 더 많은 상상의 가능성을 길러낼 판타스틱한 터전이 올바른 역할을 해내며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일주일만에 재고가 바닥을 보이게 만들고, 기어코 재판을 찍게 만들었던, 장르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판타스틱한 『판타스틱』’, ‘판타스틱(한) 장르백서’를 아직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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