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월
2009
0

눈늑대

『눈 늑대』를 읽기 전에
『눈 늑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소위 ‘장르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현재 장르문학이라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짚어볼 필요성이 있을 듯하다. 본론보다 서론이 더 긴 모양새가 될지언정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이미 다른 평자들이 했던 각 작품 리뷰 정도밖에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눈 늑대』를 이야기하면서 개별 작품에 대한 평으로만 지면을 채우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지면 낭비다. 『눈 늑대』는 개인의 소설책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웹진이 한 해 동안 거둬들인 수확을 전시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평이 벌써 거울 이전 호에 게재되었기에 굳이 같은 형태의 리뷰를 작성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이번 호 거울에 『눈 늑대』 리뷰를 쓰기로 한 이상 이전 호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그런 이유로 처음에 썼던 글은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이 글에서는 한국 장르문학의 현 상황을 통해 『눈 늑대』가 한국 ‘장르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볼 생각이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칼럼에 가깝다.

 

한국 ‘장르문학’의 다섯 가지 현상들

1.
창비의 청소년문학 5번째 책으로 기획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김보영 외, 창비, 2007년 11월)가 다른 청소년문학 시리즈 작품보다 덜 팔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만장일치의 극찬을 받은 책은 아니지만 대개 호평한 책이었고, 객관적으로 안 좋은 반응을 얻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고 판단하였기에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엔 잠시 놀라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이 지금 현재의 10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보편적 10대’(작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10대가 아닌)와 소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청소년문학을 구매하는 층이 청소년의 부모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0대를 위한 SF단편집’이라는 부제는, 청소년문학 판매 전략으로는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2.
2009년 새해를 앞둔 시점부터, 오멜라스의 한정양장본 포기 소식이 들려왔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스타니스와프 렘, 오멜라스, 2008년 6월)와 『솔라리스』(스타니스와프 렘, 오멜라스, 2008년 6월),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올라프 스태플든, 김창규, 2008년 7월)과 『시리우스』(올라프 스태플든, 이영기, 2008년 10월)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오멜라스의 SF 한정양장본은 일단 실패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올라프 스태플든이라는 이름이 국내 SF 팬덤에서조차 생소했고, 너무 오래전 작품이라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점, 그리고 지나치게 가격이 높았던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렘이나 스태플든의 이름을 들어보고 작품을 접해본 세대가 30대 이후 세대에 한정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독자층 설정의 문제를 꼬집었다.

3.
노블레스 클럽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로크미디어에서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꿈을 걷다』(김정률 외, 로크미디어, 2009년 3월)를 출간한다. 일반판 출간 전에 애장판 신청을 접수하며 ‘1000명’ 한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신청자 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여명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홍보-신청접수가 인터넷-계좌이체 로만 이루어졌고, 시일이 촉박하여 독자들에게 급조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법했다. 게다가 독자들이 일반판의 저자사인본을 더 선호하면서 타깃으로 삼았던 애독자들이 양분되었고, 진행상의 문제로 잡음이 일었다. 결국 출판사는 독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이벤트를 진행했고, 독자들은 비싼 양장본을 사고 나서 급히 마련한 사인회에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4.
절판된 책을 사기 위해 서울 도심 주요 서점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찾아 헤매던 중 일반 스테디셀러 소설 코너 사이에서 『얼음나무 숲』(하지은, 로크미디어, 2008년 1월)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노블레스 클럽 소설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소설 코너에 있었던 것은 『얼음나무 숲』 뿐이었다. 이는 일반 소설 독자들에게 ‘장르소설’이 아닌 ‘소설’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 『얼음나무 숲』뿐이라는 것이고, 『얼음나무 숲』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 『얼음나무 숲』이 선점한 위치와 같은 영역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노블레스 클럽이라는 브랜드는 『얼음나무 숲』을 발굴했고 장르 소설계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나마 라이트노벨보다 나은 것은, 라이트노벨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는 거다.(이들은 언제나 ‘만화서적’이나 ‘판타지/무협/SF’ 코너 옆에 존재하며, 한국에서 라이트노벨을 표방하고 나온 소설 중에 이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5.
이른바 장르 작가들의 ‘발견의 시대The Age of Discovery’는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 이들은 문장이나 크로스로드 같은 웹진, 판타스틱이나 파우스트 같은 잡지들, 혹은 인터넷 기반의 공모전들 내에서 소비되고, 대부분 이에 그쳤다. 이들 잡지와 공모전의 인재 풀은 한정되어 있고, 외부에서 이 좁은 구역에 굳이 진입하는 경우도 없었기에 처음부터 ‘그 작가와 그 독자들의 만남’으로 귀결될 공산이 컸다. 이것이 ‘1라운드 끝 2라운드 시작’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여기서 맴돌게 될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카테고라이제이션의 문제
창비의 청소년문학선, 민음사의 황금가지, 웅진의 시작,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 등, 최근 발매된 단편집들은 이른바 ‘장르문학’이라는 카테고리를 두르고 있다. 물론 작가들이 외부에서 활동하기보다 거의 장르문학계 내에서만 활동해왔으니 이들 작가를 소개하고 책을 홍보하는 데는 기존 장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카테고리의 함정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결국 제한된 독자와 만날 수밖에 없다. 세일즈에 있어서 카테고라이제이션(Categorization)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수많은 웹사이트들의 흥망성쇠가 증명해주고 있다.

카테고라이제이션의 문제를 파고들어보자면, 거울의 중단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이상의 세대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픽사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압도할 수 있었던 까닭도 이에 대한 고민을 거쳐 해결책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개미AntZ』, 『스몰 솔져Small Soldiers』와 『치킨런』, 『슈렉』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하다.
거울에서 중단편을 게재하는 작가 중 대다수는 에코베이비붐 세대이다. 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이다. 이 세대의 장점은 다양한 문화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고 큰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며, 또한 다양성과 시장 규모의 거대함으로 인해 세대 보편적인 접근이 어렵고 취향이 분명하여 매우 까다로운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눈 늑대』에는 이러한 세대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소설들이 몇 편 실려 있다. 표제작인 「눈 늑대」부터 「타렐의 심장」, 「마탄강 전투」까지, 이 작품들에서는 동화적 상상력에서 비롯한 환상성과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장르에 가까운 작품과 소품들(「그레이브 키퍼」, 「빗속의 나비」, 「최후의 생물」, 「이사 준비」)이 예측 가능한 수준의 내러티브와 재미를 주는데 그치는 반면, 작가 자신이 붙든 소재를 보편적 환상성과 감성으로 확장 가능한 곳까지 끌어올린 작품들은 그 이상의 효과를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전달하려는 소재와 분위기에 매몰되기 쉬운 장르 단편들에서 지향점과 경향성의 차이는 작품의 깊이 뿐 아니라 대상 독자의 확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눈 늑대』에서 자기체제 내로 수렴한 소설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거울의 작가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것과, 이를 극복할 필요성이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출간된 단편집 중 여타 장편소설이나 주류문학의 단편집과 비교해볼 때 그리 손색없는 경우에도 실제 반응은 주류에서 내놓은 단편집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장르문학은 결코 ‘안정적인 필치’를 장점으로 내세울 수 없다. 그 프레임은 주류문학의 것이다. 그리고 주류문학의 신진작가들은 ‘독특한 상상력’이라는 장르의 프레임마저 위협하고 있다. 주류와 장르의 경계와 그들이 지녔던 전통적인 프레임은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오히려 견고화되는 것은 ‘세대’다. 이제 중견으로 올라선 작가들은 30대 이후 세대까지 아우르는 반면, 20대 작가들은 데뷔한 순간부터 그들 세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미리 판이 짜여 있다. 출판사들은 ‘발칙한 상상’ 따위로 20대 작가를 포장하고, 이는 윗세대들의 접근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너희들의 영역은 여기까지다. 여기를 넘으려면 더 실력을 쌓고(나이를 먹고) 와라.” 궁극적으로 20대가 이 판을 뒤엎고 혁명하는 방법은 주어진 프레임 내에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 이를 뛰어넘는 작품을 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환상문학/과학소설을 쓰고 있어’ 같은 이상할 정도로 견고한 의식이나 장르에 대한 편협한 카테고라이제이션을 고집할 경우 장르에 속한 작가들이 현재 보유한 독자층 외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미 주류문학이나 장르문학과 같은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경계문학’이니 ‘환상문학’이니 ‘SF단편’이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이들 작가들은 이러한 카테고라이제이션 속에서 생산하고 소비되고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러한 카테고라이제이션을 작가만의 힘으로 극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도전과제
해결책은? 작가들 스스로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어 도전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은 ‘뭉쳐야 산다’ 정신으로 이름을 알리고 등용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단편집과 같은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것은 ‘언젠가는 걷어차야 할 사다리’에 불과하다. 아니, 오히려 ‘잘못 댄 사다리’일 수도 있다. 이 중단편집이라는 사다리를 조종하는 사람들은 – 거울은 제외 – 작가 스스로가 아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장르문학계에서는 늘 ‘영웅’을 기다린다. 꿈꾸는 영웅이 ‘제2의 해리포터’든 ‘제2의 이영도’든 꿈을 꾸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하나 있다. 해리포터 신드롬, 이영도 신드롬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장르문학을 읽는 사람들? 만화나 영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해리 포터』(조앤 K. 롤링, 문학수첩북앳북스, 1999년 11월)와 『드래곤 라자』(이영도,황금가지, 1998년 5월)를 좋아했던 백만의 사람들 중에는 물론 장르문학을 읽어왔던, 만화․영화․게임 등을 통해 판타지를 즐겨왔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돌풍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의 중심부에는 게임과는 거리가 멀고 책도 전혀 읽지 않았던 어른들과, 게임 외에는 즐길 만한 것을 찾지 못했던 아이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또한 이들은 ‘판타지’ 혹은 ‘아동판타지’라는 카테고리가 생기기 전에 소설이라는 카테고리로 들어가며 폭넓은 계층과 만날 수 있었다. 만약 『드래곤 라자』가 지금 시점에서 나온다면 그때와 같은 판매고는 꿈꿀 수 없다. ‘판타지’ 코너로 직행할 테니.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라이트노벨이 보편적 10대나 30대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카테고리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결국 출판사와 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카테고리를 작가가 의식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다가서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선보이는 중단편집으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할 수 있는 노블레스 클럽의 『얼음나무 숲』은 한 권짜리 장편이다. 기존의 문학계에서 시행하는 장르문학상은 어김없이 한 권짜리 장편소설, 그것도 영화화가 가능한 소설을 원한다. 독자도 그렇다. 결국 중단편집의 역할은 좋은 장르 장편을 낼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거울이 해마다 중단편선을 내는 것이 단편집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예비 작가 ‘소개’라는 중간자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장르 작가에게 있어 이는 하나의 예비 관문으로 인식되는 데 그칠 것이다.
『눈 늑대』는 책의 내용과 만듦새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 서 있다. 만약 거울 중단편선이 아마추어로 남길 바란다면 앞으로는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김이환 외, 황금가지, 2008년 7월)에서 다루기 어려운, 「유가폐점」이나 「월요일」 같은 작품을 중점적으로 실어서 보다 특색이 강하고 작가 특유의 튀는 장점을 펼칠 수 있는 지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추어의 영역을 벗어나 프로의 관문, 혹은 스스로 프로(거울의 직접적 기획, 출판)가 되고자 한다면 「빗속의 나비」 같은 외전이나 「최후의 생물」, 「이사 준비」 같은 소품이 아닌 「타렐의 심장」이나 「마탄강 전투」처럼 장르의 내피를 과용하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면서 감성적으로 보편적인 독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소품으로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어렵고 장르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상을 남기기는 부족하다).
신인 작가의 글보다 이전 중단편선에 글을 실었던 작가들의 글이 더 좋고 더 많은 가능성이 보이는 것 또한 문제다. 거울이라는 프레임 내에서 더 이상 나올 만한 작가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울이 할 수 있는 것

거울은 ‘화요일 밤의 작가 워크숍’이나 ‘클라리온 워크숍’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거울이 정말 문자 그대로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을 위한 몇 가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척 팔라닉의 Writer’s Workshop에서는 척 팔라닉이 직접 회원들의 작품 리뷰를 해준다. The Cult Master’s Program은 6주 분량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클라리온 워크숍에서는 케이트 윌헬름을 비롯한 작가들의 강의가 이어진다. 거울의 합평회는 그 성격상 작가들이 서로 평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고, 거울의 작가 중 척 팔라닉이나 케이트 윌헬름 같은 작가도 아직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은 웹진 문장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거울은 지금 무엇을 할(해줄) 수 있을까.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주의 깊게 읽고 사려 깊은 평을 해주는 독자이다. 거울의 ‘시간의 잔상’과 ‘먼 여정’ 필진은 40명에 육박하지만 리뷰와 기획, 기사를 망라하는 기사 필진은 15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대부분 기획을 맡고 있거나 시간의 잔상 필진을 동시에 맡고 있어 ‘독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필진은 드물다. 웹진에서 독자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과 공간이 적다는 것은 거울이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력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들이 어떠한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떤 독자들에게 다가서야 하는지(혹은 다가설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무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거울의 작품들이 보다 많은, 폭넓은 독자들과 마주하고 작가들이 더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도 고민을 해야 하겠지만, 거울이 할(해줄) 수 있는 영역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20090227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