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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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도 불쾌합니까

기분 나쁜 하루를 상상해보자면, 이렇다.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장마철, 후텁지근한 공기가 팔다리에 쩍 들러붙어 떨쳐낼 수 없다. 이웃이 아무렇게나 내놓은 쓰레기 냄새가 뻔뻔하게 창문을 넘어 방을 차지하고 무슨 짓을 해도 나가질 않는다. 썩은 내를 내뿜는 싱크대 뒤로 다리 많은 벌레가 슬몃슬몃 보이는 듯하지만 잡을 수 없다. 파리와 모기는 방심할 때마다 무방비 상태였던 음식과 피부를 물어뜯고는 도망친다.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으로 식히는 열보다 냉장고가 뿜어내는 열이 더 많은 걸 알면서도 차마 끌 수 없다. 누울 자리도 없는 방이 더위에 점령당해 카페로 쫓겨난다. 겨우 자리 잡고 앉아 책을 펼치는데 맞은편에서 아이가 울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옆자리에서는 두 사람이 끔찍하리만치 듣기 싫은 연애사를 큰 소리로 늘어놓는다. 전에 앉은 사람이 흘린 음료가 테이블에 묻어 있어서 닦고 싶은데 마침 휴지가 없다. 한 번 보인 얼룩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이제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까지 거슬리기 시작한다. 음료를 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카페를 나갈 수도 없고(게다가 다른 카페까지 걸어갈 동안 땀 흘릴 생각을 하면 그냥 주저앉고 싶다), 이어폰을 두고 와서 음악으로 소음을 막을 수도 없다. 자리라도 옮길까 싶은 그때, 누군가 테이블을 툭 치고 간다. 잔이 쓰러지고, 바지가 젖는다. “미안해요.” 최소한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하는 사과에 진심이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요.”뿐이다.

『제비뽑기』를 읽는다면 이런 불쾌한 기분 속에 빠져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주변을 감싸는 요소 하나하나가 아주 무신경하게 일상을 침범하고 위협하는데, 거기에 저항할 힘도 없고 예의를 차려 대응할 수도 없으며, 그러지 말라고 쏘아붙일 수도 없고 피해 주지 말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여성의 일상이자 일생일 수 있다. 오래전에도 그렇고, 오늘도 여전히.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방영된 미드 〈에이전트 카터〉와 〈슈퍼걸〉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에이전트 카터〉는 1946년 뉴욕이 배경인데, 『제비뽑기』와 시대 배경도 비슷하고 주로 도시 여성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도 비슷하다. 1945년 이전에는 이차대전 동안 군에 차출된 남성의 빈자리를 여성 인력이 메웠는데,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돌아오자 상당수는 (그나마 남자들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던) 직업을 잃고 가정과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드라마에서 그런 압력과 성차별을 묘사할 때마다 『제비뽑기』가 떠오르곤 했다. 참전용사는 웨이트리스에게 음식 투정을 하고, 직장에서 남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직원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은 여자 몫으로 떠넘겨진다. 현대가 배경인 〈슈퍼걸〉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 슈퍼히어로는 커피 심부름을 하고, 미디어는 끊임없이 남성 슈퍼히어로와 비교한다. 70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얼마나 나아질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에 실린 첫 단편부터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턱턱 걸렸다. “아저씨가 어렸을 적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언가를 두려워했다면 현재가 이렇게 형편없지는 않을 거예요.” 어쩌면, 당신이 길에서 마주친 그녀가 10년, 20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모두가 영원히 불쾌한 사회적 치통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철에 좁은 방에서 쫓겨나듯, 자기 고향과 집을 떠나서 독립해야 비로소 숨통을 돌릴 수 있는 여성들, 카페뿐 아니라 도시 어디에서도 안락한 자리를 얻을 수 없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여성들이 있다면.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치통은 진통제로 없앨 수 없다.

20170224

월간 윤종신, 당신의 책장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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