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11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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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 Lazenca : A Space Rock Opera

1997년은 여러 모로 분수령의 시기였다. 문호 개방은 이전에 비해 질적/양적으로 달라졌고, 창작자만이 아니라 대중도 유입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또는 몇 명)이 만든 ‘콘셉트’로 한국 사회를 놀라게 할 수 있는 문화적 충격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이다. 대중은 서서히 문화 그 자체, 또는 감성 그 자체가 뿜어낼 수 있는 힘보다, 역사적/경제적/기술적인 규모의 문화적 스펙터클에 압도되기 시작했다(또한, 마니아들은 더욱 극단적 ‘실험’에 이끌렸다). 한편 세계적으로도 록 음악의 영역이 경계선까지 다다른 시기였다. 그 뒤로 록은 새로운 장르의 형성이 이전처럼 이루어지지 못했고, ‘실험’은 인디와 언더그라운드의 몫이 되었으며, 굳이 너바나의 영향을 차치하더라도 공룡 같은 대형 록/메탈 밴드들은 ‘실험’과 ‘완성도’의 양 측면을 포용하기 버거워하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MP3가 탄생한 해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았을 때, IMF 직전에 발표한 넥스트의 4집이자 애니메이션 OST인 『Lazenca : A Space Rock Opera』는 1년 전이었어도, 또는 1년 후였어도 불가능했을 작업이었다. 억 단위의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였고, 파괴되고 일그러진 세계와 순수한 개인의 자아에 천착한 콘셉트 음반이었으며,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소리를 담아냈다.

부제가 ‘스페이스 록 오페라’인 이 음반은 외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메탈의 ‘스페이스 록’ 사운드를 도입하지만(「Mars, The Bringer of War」, 「Poem of Stars」), 내적으로는 개인의 내면 또는 사회 일반의 부조리를 은유로 표현하는 이전의 넥스트와 같다. 음반의 장르 자체는 콘셉트 음반에 맞게 일관적이고 장르적 구성과 표현은 이전보다 능수능란하며 넥스트라는 밴드의 역량을 보여줄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정점에 오른 밴드가 마지막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메탈과 발라드)와 가장 야심을 품었던 장르(심포닉 프로그레시브 계열)의 요소들을 최대한 끌어낸 스완송에 가깝다. 이는 늘 불안했던 라인업이 이 무렵부터 신해철의 야심을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안정되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었다.

음반 수록곡의 순서와 흐름이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지만, 장르적 콘셉트와 감성적 콘셉트의 연결은 음반의 중반부(「해에게서 소년에게」, 「Poem of Stars」)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4집의 전반부 세 곡은 무르익은 밴드의 합과 각 멤버의 개성을 살려주는 곡 구성의 면에서 전작들을 능가하며, 오케스트라/합창단을 적극적으로 곡 구성에 끌어들여 음반의 장르적 콘셉트를 보여주고, 중반부의 세 곡은 음반의 감성적 콘셉트를 상기시키며 곡 전개의 면에서 돋보인다.

음반의 시작을 여는 「Mars, The Bringer of War」는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영향을 짐작케 하며 화려한 기타 솔로와 박자감,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극대화한다. 청자의 기대를 고양하는 첫 곡에 이은 「Lazenca, Save Us」는 신해철의 효과적인 보컬과 합창단의 코러스가 넓게 퍼지며 질주하는 밴드 사운드와 엎치고 뒤친다. 박진감과 강약이 돋보이는 화려한 두 곡 뒤에 이어지는 「Power」는 이름 그대로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힘(사회비판의 힘까지 실었다)이 넘실댄다.

「먼 훗날 언젠가」에서부터 음반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함께 신해철 발라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곡은 신해철의 가사들이 품어왔던 낭만(노스탤지어)의 힘을 곡의 보여준다. 「Poem of Stars」에서 관악기와 키보드의 사운드는 스페이스 록에서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제목조차 ‘별의 시’이다) 감성은 조금 더 무겁다. 무참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지금은 닿을 수 없는 희망을, 나약한 개인이 아름답게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기적에 대해서 신해철은 극단적이리만큼 촘촘한 구성으로 연주하고 노래한다.

런던을 오가며 현악과 합창 편곡까지 스스로 해낸 것은 그만큼 음반을 개인이 장악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분야가 그때까지(아직까지도) 한국에서 전문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미와 유럽에서 30년 동안 시도해온 분야임에도, 당시 우리나라에는 경험 있는 엔지니어가 드물었고 지금도 드물다. 세계의 음악(인프라) 속에서 느끼는 국내 현실의 한계를 신해철은 이 음반을 작업하면서 마주했다.

문화적 스펙터클을 통해 보편적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시대적인 결과물인 동시에 ‘실험’의 완성이자 종언이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장르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더 이상 후속작에서 발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음반이며, 그만큼 철저히 내부적으로 닫혀 있는 음반이다. 이 뒤에 나온 신해철의 음반들은 일렉트로닉과 테크노 등의 장르에서 좀 더 기술적인 실험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넥스트는 해체되었으며, 재결성하면서 내놓은 5집 『개한민국』(2004)은 훨씬 직설적이고 거칠어졌다. 음반은 마지막으로 남은 90년대의 대형 록 밴드, ‘빙하기의 공룡’이 할 수 있는 규모의 거대함(Space)에 관한 실험 작품(opera)이었다. 넥스트를 뒤로 하고 신해철 개인은 또 다른 실험의 무대인 영국으로 떠났고, 밴드 멤버들은 한국에 남아 노바소닉을 결성했다. 그리고, 인디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20141127

음악취향Y, 『신해철 다시 읽기』, 한울, 2016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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