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4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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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 Hawwah

컨셉 음반, 가사, 현대무용, 주체성, 여성. 가인의 『Hawwah』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단어들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어그러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깨트리자고 생각했다.

위의 단어들은 누구의 것일까. 평론가들? 아니다. 평론가들의 담론을 선취한, 소속사 홍보팀에게서 흘러나온 단어들이다. 평론가의 단어인 체하는 홍보 단어들이다. 보도자료에 실리는 ‘(라이너 노트도, 작업 후기도 아닌) 앨범 리뷰’ 같은, 황당한 말잔치다. 이러한 단어들이 명확한 가치 판단 없이 쓰인다. 마치 음식 프로그램에서 “아보카도를 넣어 이국적이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맛의 조화나 요리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의 특징을 나열해놓고 마치 음식이 재료 요소들의 특징을 합산한 것과 같다는 식의 태도 말이다. 아무리 개별적으로 훌륭한 식재료라도, 그냥 섞는다고 좋은 요리가 되지 않는다.

1. 컨셉 음반

가인의 이번 음반에 대한 모든 ‘말’들은, 가인의 음반이 ‘컨셉 음반’이라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음반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대중의 시대에, 컨셉 음반이 소비되는 패턴이나 곡의 연계성을 파헤치지 않은 채 가사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많은 이들이 음반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여기서 먼저, 실시간 차트에서 「Paradise Lost」보다 훨씬 높은 순위에 올랐고 길거리에서 훨씬 더 많이 들렸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Apple」에서 나는 기존에 가인이 부른 음악과 딱히 어떤 차별점을 볼 수 없었다. 또한 「Apple」이 ‘컨셉 음반’이라는 것과 과연 어떤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도 말해야겠다. 「Apple」 가사의 거의 절반가량은 박재범이 말하는 전형적 남성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곡이 태초의 여자와 대체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가? 그냥 제목이 ‘Apple’이고 ‘유혹’을 가사의 소재로 다루고 있을 뿐, 딱히 “하와”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갈색 가발을 쓰고 혼자 자전거와 공과 호스 등의 인공물을 가지고 노는 뮤직비디오 속 가인의 모습도 그렇다. ‘빨간’ 옷을 입고 ‘애플 힙’을 보여주는 걸로 연관성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에서 ‘컨셉 음반’의 일관성을 찾아낸다면 온갖 곡에 프리메이슨적 망상거리를 찾아내는 이상한 기독교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와를 새롭게 해석했다고 하지만, 도무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 수가 없다. 왜 릴리트가 아니라 하와를 뱀과 연결시키는지, 왜 하와와 뱀이 동일시되는지, 왜 밀턴의 『실락원』에서 ‘아담이 하와를 선택’한 것과 달리 하와가 ‘유혹’했다는 주체적 서사를 창조하면서 「Paradise Lost」를 제목으로 끌어들이는지, 이 음반에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곡의 장르, 뮤직비디오의 일관성, 화자의 캐릭터. 어느 하나의 연결점 없이 휙휙 바뀌기만 하고, 상대방 ‘아담’의 존재조차 연결성 없이 희미한 이 음반에서 어떤 컨셉을 찾아낼 수 있을까. 「Apple」에서 박재범의 랩은 ‘아담’이라는 상징적 존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Free Will」에서 도끼의 목소리는 가인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훵크와 재즈 피아노(「Apple」), 라틴과 레트로 사운드(「Free Will」)는 ‘하와’라는 컨셉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파이프오르간이 나온다고 성경과 연결성이 생기는 건가? 그러한 등장들에 어떤 ‘컨셉’적인 ‘의도’가 있는가?

보도자료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 보도자료의 말은 결국 “아보카도를 넣어 이국적이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말과 같다. 파이프오르간을 넣어 장중하고 종교적인 이미지가 난다는 식의 말이 바로 그 예시다. 특정 요소를 넣은 주체의 의도, 그 의도에 대한 음악적/영상적 가치 평가는 어디에도 없다. 해석과 평가의 몫은 평론가에게 있음에도, 평론가들은 어떠한 ‘해석’도 ‘분석’도 ‘가치 평가’도 없이 “아보카도가 맛이 좋다”고만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앨범 리뷰’를 보도자료에 싣는 시대에, 평론가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은 것만 같다. 나는 3월에 출시된 켄드릭 라마나 나이트위시의 컨셉 음반이 어떤 요소들을 어떠한 이유에서 컨셉의 완성을 위해 활용했는지, 기본적인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분석할 수 있었고 실제로 외국 평론가들은 그들의 컨셉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그와 달리, 한국에서 가인의 음반을 가장 열렬하게 분석하는 것은 평론가가 아니라 프리메이슨 음모론자들이다.

2. 가사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으면서, 나는 대중음악의 작사 방식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협업을 통해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대(代)에 걸친 캐릭터들의 관계사를 조밀하게 구축하고 여러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플롯을 조립해나가는 것에 익숙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체계성과 국내 음악 창작 시스템을 비교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물론 김이나를 ‘리릭 프로듀서’로 내세워 홍보하기는 하지만, 『Hawwah』의 곡들은 한 사람이 작사한 것이 아니다. 랩은 박재범(「Apple」)과 도끼(「Free Will」)가 맡아 썼고, 휘성, 매드클라운, G.고릴라가 각각 한 곡씩 가사를 썼다. 온전히 김이나가 가사를 쓴 곡은 「Paradise Lost」와 「The First Temptation」이다. 이 두 곡의 작사는 안정적이고, 컨셉을 고려하여 대중가요의 말맛에 맞게 잘 ‘제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 가사를 뜯어보면 어떨까. 「Apple」과 「Free Will」의 랩은 가사의 ‘컨셉’이나 화자의 ‘스토리텔링’에 별다른 시너지를 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집중도를 깎아먹는다. 앞서 「Apple」의 가사에 대해 썼으니, 더블 타이틀곡인 「Paradise Lost」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Paradise Lost」의 가사는 그 자체로 대중음악의 기준에서 보면 ‘웰메이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기준을 가져다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름을 따온) 밀턴의 『실락원』 내용이나 창작 의도와 가인의 노래 가사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음반 속지에 『실락원』에 대한 사전(辭典)적 정의를 써놓은 것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음반에서 “실락원”은 그저 하와의 유혹으로 낙원을 잃어버렸다는, 어렴풋한 ‘대중적’ 이미지의 차용 흔적만으로 남아 있다. 이외에는 어떠한 해석도 할 수 없을 만큼, 「Paradise Lost」는 철저히 『실락원』의 작품 의도나 그에 대한 재해석과 연관이 없다. 대중가요로써 필요한, 태초의 상징과 ‘유혹’이라는 근사한 (그러나 껍데기뿐인) ‘이미지’가 필요했을 뿐, 『성경』이나 『실락원』이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재해석하여 텍스트를 풍부하게 만들지는 별로 진지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The First Temptation」 또한 하와의 ‘유혹’을 소재로 하면서 『성경』이나 『실락원』과는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웰메이드’ 가사가 등장한다.(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사를 보았을 때, 하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까, 세이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까.)

물론 발음하기 좋고 듣기 좋은 단어들의 나열이며, 잘 기획되고 잘 다듬어진 좋은 가사다. 곡들을 하나씩 떼어서 보았을 때, 나는 가인의 색다른 매력을 「Paradise Lost」보다는 「The First Temptation」에서 더 많이 보았다. (덧붙여, 「두 여자」도 그렇지만, 「Paradise Lost」에서 얇고 위태롭게 찢어지는 가인의 목소리가, 작곡가의 의도와는 달리 내게는 그저 거슬리는 음향 가운데 하나로만 들릴 뿐이었다.) 가사가 와닿지 않으니, 성(聖/性)스러움을 드러내려는 뮤직비디오의 모든 시도들도 그저 어색한 소도구의 동원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기존 이미지의 연장선상인 「Apple」, 또는 「Guilty」의 직설적이면서도 깔끔한 가사가 다른 곡들의 가사보다 더 귀에 꽂혔고, 대중가요로서 더 자주 들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더구나 「Guilty」는 가인에게 SM적인 컨셉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두 여자」의 경우도, 성(性)에 대한 이중성과 양가감정을 가사로 잘 풀어냈다.(물론 그 결과물에 대해서 ‘중2병적이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0~2000년대 순정만화의 감성 말이다.) ‘컨셉 음반’의 컨셉을 드러내는 방법의 하나로써 『Hawwah』의 가사들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대중음악의 개별 곡으로써 「The First Temptation」 이후의 가사들은 가인이 보여줬던 기존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3. 현대무용

『Hawwah』의 가사들은 이성애의 범주에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가인의 캐릭터도 이성애적 섹스어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Paradise Lost」에서 가인의 춤이 전형적인 섹스어필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뮤직 비디오 감독의 세련된 컷에 담긴 컨텍스트를 찾는 데 있지 않다. 가인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는 안무 그 자체만 보면, 과연 얼마나 기존의 시도들(가까운 예로는 핫펠트)과 차별점이 있을까? 과잉된 비주얼이 컨셉 음반의 빈약한 텍스트에 드러나는 빈자리를 채우며 해석의 여지를 넓혀준 것은 사실이지만, 뮤직비디오로 텍스트를 확장한들 거기에 작곡가/작사가/가창자/안무가의 의도가 얼마나 들어 있을까.

예를 들어 영화에서, 고용감독이 좋은 촬영감독과 좋은 편집자를 기용해 앙상한 시나리오를 풍부하고 아름답고 깔끔하게 채웠다면, 그 공은 어디로 돌려야 할까? 배우(의 페르소나)에게, 시나리오 작가에게, 고용감독에게, 프로젝트 총감독에게, 레이블에게 조금씩 공을 돌려야겠지만, 영화계에선 보통 고용감독의 몫을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쳐주는 것 같다. 가인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황수아 감독에게 가장 큰 몫을 쳐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컨셉 음반의 컨셉을 고안한 이와 그 컨셉을 음악화한 작곡가 이민수와 작사가 김이나,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창자이자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가인은 각각 프로젝트 매니저와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에 해당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여기서 가인이 아니라 다른 ‘배우’ 즉 다른 가수가 이 컨셉 음반에 ‘캐스팅’됐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이 컨셉에 맞는 피지컬(발성-가창력과 몸매)을 갖춘 가수였다면, 이 컨셉 음반 프로젝트가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 그리고 가인이 ‘시도’했다는 현대무용은 이 컨셉 음반의 컨셉을 전달하는 데 어떤 가치가 있을까.

먼저, 안무에서 가인의 입김을 얼마나 인정하여야 하고, 얼마나 그 시도의 ‘의의’를 인정해주어야 할까를 따져보자. 유튜브에 올라온 논쟁(굳이 여기서 표절 문제를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표절이라고 보지 않는다)을 차치하더라도, 가인이 선보인 안무가 ‘창작’의 영역보다는 현대무용의 기본 동작 – 즉 기성품들 가운데 적절하게 ‘선택’한 것에 가깝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런데 그 안무의 스타일이 지닌 맥락과 가인 음악에서 섹스어필의 맥락(에 얽힌 해석)이 그리 잘 맞아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기성품적인 안무에 과연 복잡한 컨텍스트를 불어넣는 것이 가능한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음반은 가인이라는 아티스트의 작품도 아니고, 황수아라는 감독의 작품도 아니며, 다만 참여한 여러 디자이너들이 협업한 ‘공산품’이다. 공산품에 대해서 공산품적 만듦새를 두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공산품을 제작한 이들에 대한 예의다. 공산품을 ‘예술’로서 전제하거나, 어떤 파트를 맡은 특정인을 예술가적 지위에 올려놓은 채 과잉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다. 따라서 가인(의 프로젝트 팀)에 대한 비평은 창작자의 의도에 대한 것보다는, 이 조합품의 완성도를 이야기하는 데서 시작하고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인의 현대무용에 대해 참신성이나 완성도를 따지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핫펠트의 「Ain’t Nobody」(2014)와 비교하는 작업이 따를 수밖에 없다. 안무 자체의 파격성이나 ‘뱀’ 이미지와의 연결성(여기서 그 안무와 ‘뱀’을 연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일단 젖혀두자. 그렇지만, 기본 안무 동작에서 가인과 핫펠트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은 지적해두어야겠다)에서 가인에게 더 점수를 줄 수야 있겠지만, 가인 안무의 파격성은 기존 섹스어필 안무의 연장선상에서 기인한 것에 가깝지, 현대무용에서 끌어온 안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또한 작년에 먼저 현대무용을 공중파 방송에서 시도한 데다 세트 활용의 방식이나 안무의 디테일 완성도 면에서 핫펠트가 더 돋보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체적인 곡과 안무에서 가인이 좀 더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속사의 뜨뜻미지근한 지지에도, 작품 전반에 관여하면서 여러 독특한 시도의 결합이 가능했던 핫펠트와 안정적으로 형성된 기존 인력망을 총동원한 가인의 제반 상황을 봤을 때, 가인보다 핫펠트의 음악에서 더 흥미로운 구석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게 내 결론이다. 물론 여기에는 ‘캐릭터’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주체성’의 문제도 연결되어 있다.

4. 주체성 그리고 여성성

기왕 앞에서 영화를 비유 삼았으니, 영화의 예를 들어보자. 《Bird Man》(2014), 또는 《Iron Man》(2008)이라는 영화에서 Michael Keaton이나 Robert Downey Jr.가 아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시나리오의 캐릭터나 컨텍스트, 페르소나 면에서 그들보다 어울리는 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하와’라는 ‘만들어진 시나리오’ 속에서 가인은 얼마나 그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일단 가인은 기독교도가 아니어서 사후적으로 컨셉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현대무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음반의 관계자들은 가인의 캐릭터를 아주 특별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지만, 가인의 캐릭터와 이 컨셉 음반에 쓰인 주요 요소들은 별반 상관이 없다. 가인의 캐릭터가 그렇게 특별한가는 의문이다. 아이돌들은 계속 나오고, 그 아이돌들에게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은 제작자들은 많다. 아직 많은 아이돌들이 청순과 섹시의 전형성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인이 그 전형성을 주체적으로 박차고 나온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어진 캐릭터에 적응하기 바빴던 지난 솔로 음반들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주체성보다는 객체로서의 수동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좋은 배우라고 할 수는 있어도, 독창적인 연기 세계나 양식이 있는 배우라고 하기는 모자라다. 「피어나」(2012)에서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캐릭터 해석이 나오는 듯했지만, 이후에는 음악 그 자체나 가인의 캐릭터보다는, 기존의 가인 캐릭터에 대한 ‘가십’과 ‘이슈 메이킹’에 치중하면서 가수도, 뮤지션도 아닌 ‘셀러브리티’의 태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가인이라는 배우가 아이돌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윤아처럼 자신의 비전형적 캐릭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오히려 주어진 캐릭터를 잘 소화해야 하는 고용 배우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주체적 여성’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주체성은 ‘누구’의 주체성일까.

여기서 가인은 여성 배우들과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여성 배우들에게 주체적 여성성을 갖춘 배역은 손꼽을 만큼 적다. 그마저도 몇몇 배우에게만 돌아간다.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배우들이 직접 감독을 하거나 좋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발굴하려고 발 벗고 나서기 시작한 것은, 그저 좋은 배역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한정적인 기회가 늘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가인은 무척 축복받은 상황에 있다. 새로운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그 배역을 어느 정도 소화해왔고, 그 뒤로 비전형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꾸준히 주어졌다. 김이나 작사가가 맡았던 다른 (아이돌)가수 중에서도 가인 정도로 주체성을 강하게 밀어붙인 여성 캐릭터는 거의 없다. 여기에 가인의 공은 얼마나 될까. 소속사, 프로젝트 매니저, 작사가, 안무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이 가인에게 그러한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가인 스스로 주체적 여성의 캐릭터를 쌓아올릴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여성 배우들처럼 스스로 시나리오와 배역을 선택하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배우가 캐릭터를 다듬어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인의 현재 입지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일 수 있는지 나는 의문이다.

여기서 가인 자신이 캐릭터를 강화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의 문제가 대두된다. 앞서 말했듯이, 적어도 『Talk about S』(2012)에서는 가인에게 자신의 영역이 꽤 크게 있었다. 그러나 『Romantic Spring』(2013) 과 「A Tempo」(2014) 에서는 전형성에 다시 갇혔고, 『Truth Or Dare』(2014)는 가십과 셀러브리티에 빠졌다. 『Hawwah』에서 다시 ‘연기 변신’을 시도하지만, 「Paradise Lost」보다 「Apple」이 더 대중적 지지를 받는 모양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대중에게는 『Hawwah』가 『Talk about S』와 『Truth Or Dare』 사이의, 섹스어필과 주체적 여성성의 전시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양새에 가깝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Paradise Lost」(와 「The First Tamptation」)처럼 남성성 자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어둡게 가려진 채 여성만이 희고 검게 혼자서 유혹적으로 빛나는 주체적 상태보다, 거의 듀엣곡에 가까우면서도 남성이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훔쳐보기(여성의 대상화)처럼 느껴지는 「Apple」 쪽이 보다 대중에게 쉽고 편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Hawwah』는 전반부 절반의 안정적이고 평범한 성공이자, 후반부 절반의 실험적 시도(와 그 절반의 실패)가 담긴 분열적인 음반이다. 그리고 이 분열적인 상태는 어정쩡한 실험과 안정의 타협점에서 기인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범한 성공과 실험적 실패

가인의 음반들에 대해서는, 주어진 정보만 얼기설기 엮어도 누구나 “썰”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정보’, 즉 보도자료의 단어들을 넘어서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가인이라는 가수가, 만들어진 캐릭터-아이돌(‘우상’의 사전적 의미로써, ‘기존의 재료들로 만들어낸 형상’)과 차별화되는 지점들은, 그저 ‘컨셉’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가인(의 소속사) 측에서는 더더욱 (늘 새로운) ‘컨셉’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작업공정 면에서 가인과 아이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인과 엑소의 차이보다 가인과 핫펠트의 차이가 더 크다.

나는 아이돌의 작업공정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가인의 컨셉적 차별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그다지 의미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다른 아이돌과 가인의 음반 작업공정은 크게 다르지 않고, 그 작업공정을 이끄는 기존 아이돌의 프로젝트 매니저들도 이제는 조금씩 ‘아이돌’에게 다양한 ‘컨셉’들을 부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다름’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가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청순과 섹시가 아니라 다른 컨셉을 내세웠다고 해서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하는 것도 문제이고, 청순과 섹시를 다뤘다고 해서 그 자체로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도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컨셉은 아무것도 담보하지 않는다. 작품의 가치는 작품을 규정하는 외부 단어들에 있지 않다.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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