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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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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윈터 솔져의 첫 부분은 본 시리즈가 연상되는 잠입 액션으로 시작한다. 내부에 목적이 다른 스파이가 둘이나 있고, 실제로 중요한 건 작전 자체가 아니라 작전을 만든 사람이 목표한 물건. 캡틴은 쉴드라는 조직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그가 (자신과 아무런 연고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21세기에도 나치 시대처럼 분명한 선악과 정의를 추구하며 활약할 수 있을까.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과 캐릭터에서 미국과 정의로움은 일치해야 할 것인데,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과연 미국이 정의롭다고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정확히는 캡틴 아메리카가 오랫동안 동결되었다가 21세기의 뉴욕에서 깨어난 뒤부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는 마블의 문제라기보다 미국적인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 자체의 문제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가 쉴드에 들어온 것은 과거의 연인이었던 페기가 창립한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기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도 처음의 건국의도를 잃은 채 내부의 적을 키우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윈터 솔져는 한 술 더 떠 계속하여 기억을 잃고 자신의 의지를 잃은 채 미국이 아닌 히드라의 꼭두각시가 되어 수십 년 동안 임무를 수행한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가 동결되지 않고 6-70년대와 80년대를 살았다면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온갖 더러운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그 불의함을 껴안으며 기꺼이 봉사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왓치맨]이 제공했고, 캡틴은 뒤늦게 망가진 세상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만약 [다크 나이트]가 조커의 ‘윤리 실험’을 통과하듯이, 캡틴 아메리카도 선의로 가득 찬 세상을 긍정했다면 굉장히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그 선함으로 똘똘 뭉친 정의감은, 모든 것이 흐릿하게 바뀐 세계의 모호성 속에서 정의를 사람들의 예측불가능성 속에 던져놓은 채로 각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낸다. 페기가 남긴 과거의 유산을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는 캡틴의 주장에, 어떻게든 유산을 끌어안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닉 퓨리는 그가 새로운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다른 영웅과 다른 점은 그가 정의롭다는 점에 있지 않다. 자신을 기꺼이 따를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같은 뜻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지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조직’, 팀과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사람을 버리지 않고, 자신과 함께 했다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는 것이 캡틴을 다른 영웅과 구분짓는 특징이다. 선악의 구별이 확실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선악은 모호하기 때문에, 팀과 적을 구분짓는 것도 모호해졌고, 의지없음과 잘못된 의지가 적없는 세상의 적이 되었다. 적의 목적은 이전처럼 명확하다. 필요악을 거쳐 선에 이를 수 있다는 적의 논리는 그 가차없음만큼이나 확고하다. 명확함과 확고함이 실종된 세상에, 캡틴은 모호함을 지켜내고자 명확함을 제거하고 조직을 제거한다. 자신의 세대가 추구했던 명확함은 더럽혀지고, 결코 씻어내 순백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임을, 21세기의 닉 퓨리보다 캡틴이 먼저 깨닫고 확고하게 모호함을 지켜낸다.

그렇게 그가 새로 만들어낸 팀의 팀원은, 순수한 열망이 식어버린 은퇴병사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했던 KGB 출신 첩보원이다. 첩보원은 숨겨온 모든 것과 숨겨야 할 모든 것을 드러내며, 단짝을 잃은 채 자신의 시대를 접어버린 은퇴병사는 새로운 단짝을 찾아 새로운 활약을 펼치고, 캡틴은 미국에서 미국인의 가치를 되찾고자 미국인들이 만든 조직을 해체하고 파괴한다. 잊고 잃은, 감추어진, 과거와 결별하는 것이 1918년생의 (제2차세계대전 영웅인)미국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크 나이트가 영웅임을 포기한 자의 영웅담이라면, 캡틴 아메리카는 영웅이 필요 없는 세계를 억지로 만들려 하는 악당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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