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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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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의 모험과 움직이는 조선어』에서

『근대시의 모험과 움직이는 조선어』

정지용은 왕성하게 새로운 근대 문물을 섭취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자리에 처해 있었다. 유학 시절의 정지용이 일본어와 조선어 두 가지 언어로 창작했던 상황은, 1930년대 이후 심화되는 이중언어적 상황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나다 히로코는 기타하라 하쿠슈와 접촉 관계에 있었던 김소운과 정지용을 비교하며, 정지용의 일본어 시가 김소운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외국어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일본 문단의 활동을 위해 창작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습작 과정의 산물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지용이 창작의 규준을 일본어 시에 두지 않은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조선어와 일본어 창작 그리고 상호 번역의 과정에서 조선어를 번역 가능한 위치에 둘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지용은 일본에서 대학의 정규과정 영문과에 적을 둔 학생이었으며, 당시 일본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기타하라 하쿠슈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수자의 언어로 말하는 이방인이었으며, 가난한 모국 조선의 학비 지원으로 유학하고 있는 식민지인이기도 했다. 그가 겪었던 정체성의 고민은, 1930년대 후반에 제국 일본의 지방어로서 그리고 중앙인 일본 문단의 향토 문학으로서 가치를 획득하는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자리를 주장하거나 수용해 갔던 문학인들의 고민과 동형(同形)은 아니지만 닮아 있다. 정지용은 일본 문단과 제국이 이루었던 근대적 문명과 문화의 선취를 열망하고 동경했으나, 자신은 모국인 조선의 고향에 돌아가 교편을 잡아야 할 식민지의 지식인이라는 점을 잊을 수 없었다. 혼재된 문물과 복합적인 정체성 등으로 인해 흔들리는 혼돈스러운 감정이 그의 시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흔들림과 혼돈 자체가 근대적 경험이기도 했다. 그의 예민한 시적 감각 속에서 이와 같은 근대적 경험을 구현하는 조선어의 새로운 형식이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에 앞서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지용이 [파충류동물]에서 기차를 파충류 동물에 비유했을 때, ‘파충류’라는 학명은 낯설고 이질적인 어감으로 기차의 “괴상하고 거-창한” 이미지를 대변한다. 기차가 ‘도마뱀’에 비유된다는 사실도 낯설지만, 그 도마뱀이 시인의 지식 체계를 거쳐 파충류 동물이라는 당시로서는 비시적(非詩的)인 조선어로 탈바꿈할 때, 시적 공간은 매우 새로운 것으로 육박해 온다. (…) 재치 있는 비유를 넘어 이 신기하고 괴이한 경험이 근대적 지식체계의 분류법을 빌어 언어화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 인물들의 다양한 국적과 사정과 비애는 ‘파충류 동물’에 비유된 거대한 근대적 문물의 소화기로 수렴되면서 휘발되고, 남는 것은 이 다종다양한 인물들이 한데 섞여 기차로 이동하고 있다는 근대적 상황 자체이다. 그리고 이 근대적 상황은 (…) 단어들의 이질적인 만남 속에 그리고 ‘기차’와 ‘파충류 동물’의 생경한 만남 속에 재현된다.

 

그는 “조선의 새로운 시는 한 개 통일된 시론 위에 세워진 시운동의 형태까지는 갖추지 못하였”고 “발표된 시론이라고는 거의 없음”을 지목하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분산적인 개개의 실험”임을 말하여ㅆ다. “새로운 시인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공통된 시론은 준비되어 있지 않고 그러핟고 개개의 시인은 각각 그의 시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상상적”인 방식으로 당시 조선의 시가 걷고 있는 현대시의 길을 해설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며 조선시의 실험에 주목한 바 있다.

 

건축과에서 공부한 이상의 관심이 기하학에 있었다는 점은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기하학을 포함하여 수학과 과학의 언어들을 시 속에 들여오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적인 형태미에 대한 관심보다는, 수학이나 과학의보편적 성격을 언어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 과학의 실험이나 수학의 과정은 원인을 도입하여 산출된 결과를 현상으로 하고 있다. 이상은 과학과 수학의 요소를 들여온 시들에서 마치 수식이나 실험처럼, 서로 작용하는 원인들과 현상된 관계를 살피고 각각의 요소가 이 관계 속에서 의미를 띠는 양상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현실의 양태와 관계들은 과학과 수학의 언어로 완벽히 환원되지 않고 서로 엇갈리면서 배치된다. 이상은 언어의 배치와 엇갈림으 통해 과학과 수학의 인과관계처럼 정합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상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배제한 것은, 조선문학 전통의 기반이자 당시의 많은 조선 시인들에게도 시적 관습이 되었다시피 한 ‘자연’에 대한 비유와 정서적 동화였다. 이상에게 비춰진 자연의 모습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이며 끝없는 권태를 야기하는 “공포의 초록색”이었다. 1930년대 조선 문단에서, 국토 순례나 지방적 색채의 발견을 통해 조선의 자연이 지니는 고유한 미감을 그려내고자 했던 조선주의자들이나, 대자연의 섭리를 통해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확인하려는 프로 문학가들의 형상화 방식에서 이상만큼 멀리 떨어져 있던 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상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관조하고 자연에 동화되는 방식을 통해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냈던 전통적인 조선시의 관습을 거부했다. 그에게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과학과 수학의 객관화된 언어와 보편적인 형식이었다. 1931년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1934년 오감도 연작을 발표하는 시기까지, 이상에게 과학의 언어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사고하여 표현해내는 매재였다.

이상은 독자들의 항의에 의해 자신의 시연재가 중단된 사실에 대해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니냐”고 격하게 비판한다. 이상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당시 조선문단의 분위기를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고 있다는 표현으로 질타한다. (…) 그는 자신이 기획한 조선어의 여러 가지 실험과 근대적 형식에 적합한 문체의 개발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새길”이었을 텐데, 이 새길이 앞으로도 “에코” 즉 정당한 반향을 얻지 못하리라고 이상 자신 또한 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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