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6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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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과 어려운 말

쉬운 말과 어려운 말

매학기 첫 수업시간마다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말해서 여러분이 못 알아들으면, 내 잘못이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니, 묻고 또 물어라.”

학생은 무죄다. 교수의 능력이나 태도가 문제다. 진리는 쉬운 것이다. 아니, 쉽게 말할 수 없으면 자신이 모르는 것이다. 자기가 모르니까 어렵게 말하고, 어렵게 말하니 남이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쉽게 알아들을 수 없으면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르치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쉽게 탓한다. 자기를 탓하지 않고 남을 탓하는 한, 그는 훌륭한 ‘가르치는 사람'(teacher)이 될 수 없다. ‘선생'(先生)이 필요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것을 먼저 많이 배워 후생(後生)에게 쉽게 짧게 옮겨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노릇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연구자이거나 도사일 뿐, 좋은 교육자는 아니다.

언제 자기의 말이 쉬워지는가? 간단하다. 잘 이해하고 있으면 쉬워진다. 자기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 말이 돌고 어려워진다.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이다. 자기의 이해가 여덟 아홉은 되어야 표현이 하나둘로 적절하게 나오게 된다. 아는 것이 하나둘 밖에 없는데 말이 어떻게 여덟아홉이 될 수 있겠는가. 있다면, 대여섯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이 되어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말과 뜻의 크기가 뒤바뀌는 것이다. 뜻이 열일 때 말을 하나 하면 말이 탱탱하고 딴딴하다. 그러나 말의 크기가 뜻의 크기보다 열 배가 되면 말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자유, 정의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 내용은 여전히 초등학생 정도의 양만을 담고 있다면, 그 말은 부끄러워 서 있을 데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개념을 배우는 학생일수록 말을 쉽게 쓰라고 권유한다. 어려운 말은 누구든지 한다. 쉬운 말을 누구나 못할 뿐이지.

어려운 말의 예를 보자. ‘주체는 실존적 한계에서 염려하는 현존재다.’ 말만 어렵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늘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참 어렵게 말한다. 영어가 들어가면 더하다. 요즘 유행어처럼 ‘콘셉트'(concept)가 없어지고 만다.

번역에서 위의 경우가 딱 들어맞을 때가 많다. 이해하고 번역했으면 쉽다. 그런데 모르고 번역했으면 어렵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번역의 원칙을 ‘이건지 저건지 모르겠으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번역할 것이지, 모호하게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으로 세우고 있다. 틀린 번역은 고칠 수라도 있지만, 모호한 번역은 고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칙은 당연히 ‘작가의 원의에 충실할 것’이다.

인문학 계통의 책 가운데 난삽해서 읽기 어려운 책은 미학 쪽인 것 같다. 알다시피 미학은 철학의 한 분파다. 그런데 미학을 번역한 사람이 철학을 잘 모르다 보니, 개념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어느 학문이든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완성시킨다.

여기서 퀴즈 하나. 인도 사람인 쿠마라지바(Kumarajiva 鳩摩羅什: 344-413)가 중국에 와서 번역한 불경이 더 쉬울까, 아니면, 중국 사람인 삼장법사 현장(玄裝: 602-664)이 인도에 다녀와서 번역한 불경이 더 쉬울까? 달리 묻는다면, 쿠마라지바의 것과 현장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산스크리트어를 그냥 쓴 직역(直譯)이 더 적을까? 재밌게도 답은 쿠마라지바다. 중국인을 위해 쉽게, 자기 말도 중국어로 바꾸면서 번역했다. 아이들에게 말하듯이, 잘 알아들으라고.

우리의 말은 쉬운가, 어려운가? 행여 남을 속이려고 어려운 말을 쓰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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