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6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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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3부작 메가토크 [3] – 듀나가 말한다」에서

<매트릭스> 3부작 메가토크 [3] – 듀나가 말한다

하지만 가상현실과 인식론에 대한 끝도 없는 비유와 분석은 사이버펑크 이전부터 존재했다가 사이버펑크가 유행하던 80년대에 거의 완벽하게 교통정리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고 새 이론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서 도교 사상과 불교와 같은 동양 문화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아까도 말하지 않았는가. 대부분의 사이버펑크 작가들은 언제나 동양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고 그건 그들이 버릇처럼 삽입하는 쿨한 설정의 일부였다. 많은 평론가들은 조셉 캠벨과 기독교 신화, 메시아 사상, 그리고 그들을 영화에 쑤셔넣는 원형적인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SF/판타지 장르에서 더이상 이건 분석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이 장르에 속해 있는 모든 작가들이 캠벨을 읽었고 어떻게 하면 그 책을 지금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치며 만들어내는 대서사시에 대입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50년대 미국 펄프 소설들을 프로이트 심리학에 맞추어 분석하는 것처럼 따분하다(당시 웬만한 펄프 작가들은 대부분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고 그 요소들을 비평가들을 위해 일부러 삽입했었으니 결국 대부분의 그런 비평서들은 사지선다형 시험 정답지 같았다). 장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런 분석엔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 정도의 지적 노동도 필요없다. 결국 이들은 수십년 동안 장르 안에서 끝도 없이 정리되어 거의 고등학교 전과서처럼 된 이야기를 신선한 척하며 또다시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기초부터 말이다. 물론 이런 비평들은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제대로 읽는 것도 아니다. 워쇼스키 형제들이 가상한 이상 관객은 분명 이런 장르 컨셉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매트릭스>의 진짜 가치는 진지하고 새로운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장르 도구들을 이용한 위트 넘치는 포스트모던한 게임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터줏대감들의 짜증은 <매트릭스>라는 시리즈의 유익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순수한 SF가 아니라 할리우드 주류영화라는 데 있다. 만약 <매트릭스>가 쿨한 스타일로 치장한 SF 전과서라면 바로 거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이 작품을 지금까지 축적된 SF적 사고들이 일반 관객과 만나는 통로쯤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SF는 늘 소수의 오락이었고 그 안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고실험과 토의들은 늘 팬덤 안에 갇혀 있었다. SF 애호가들은 특별한 과학적 도약이 있을 때마다 3류 장르물의 조건반사적 비명소리를 반복하는 매스컴과 대중을 비웃었지만(모두가 입을 모아 마치 싸구려 SF소설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아악, 과학자들이 신의 섭리를 위반하려고 한다!”를 외쳐댔던 복제양 돌리 때를 생각해보라) 정작 그들이 지금까지 생산한 철학적 결론들이 그 싸구려 비명소리에 묻혀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는 것들을 끝도 없이 봐야만 했다. <매트릭스>는 짜깁기 영화이고 허세가 반인 작품이지만 적어도 장르가 생산해낸 다양한 사유들을 비교적 명쾌하게 요약해서 보여줄 줄은 알았다. 결과는 비교적 생산적이었다. 아까 나는 <매트릭스> 교양서들을 놀려댔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진부함을 빼면 그 책들도 참고서로 꽤 쓸 만하니 말이다. 적어도 SF 장르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생각이 없는 독자들에게 <매트릭스>와 이 책들은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 모든 장르와 책들을 탐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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