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8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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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역설

올림픽은 국가주의적 정권들의 ‘국민총화’를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던 나라들은 올림픽 이전과 올림픽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굉장한 변화를 겪지요.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이 수도(首都)급의 도시(대부분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는 그 나라의 수도이거나 큰 도시입니다. 이는 월드컵과는 약간 다르죠)에 찾아오면서, 그리고 그 외국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수도의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직접 경험하면서, 꽤나 큰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별 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던 일들이 올림픽을 통해 알려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전 대만이라는 나라의 실체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대만의 메달리스트들이 대만 국기를 걸지 못하고 국가가 연주되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통해서 얻는 정보가 있지요. UN에서 쫓겨난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못하고(성화 봉송만은 보이콧했다), 또 내부적으로 인구 구성의 문제와 함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올림픽이라는 거대 행사가 보여주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한 단면 같은 것 말입니다. 홍콩이 자신의 국기를 쓰고 국가를 연주하는 것, 그리고 꽤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에 흡수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이 역설은 얼마나 드라마틱한가요. 그외에 ‘듣도 보도 못한 잡’국가 그루지야와 강대국 러시아의 전쟁이 있었던 줄도 몰랐다가 올림픽을 통해 알게 된다든가, 그러면서도 올림픽 특유의 (실속은 없다는 비난은 있지만)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는, 스포츠로 이루는 세계화 같은 허울 좋은 이미지들에 낚인 사람들이 ‘역시 올림픽은 러브 앤 피스구나’ 같은 헛소리를 해서 위구르나 티벳 같은 곳의 주민들 복장을 뒤집게 만든다든가 하는 기능도 합니다.

혹자도 말했듯이, 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자국의 눈’으로 본 올림픽의 단면입니다. 우리가 식민지로 전락했던 시절, 손긔정 선수와 남성룡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딸 때에도, 우리는 올림픽을 만든, 국제사회라는 거대한 국가주의적 시스템에 대한 고찰 따위는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긔정 선수는 우리 민족의 손기정이었지, 대일본제국의 기테이 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기테이 손이라고 표기했었고, 무역 강국인 한국의 강력한 항의가 없었다면 아마 고쳐지지 못했겠지요.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의 동아시아에서 이런 ‘민족국가’ 이미지는 올림픽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중국의 핸드볼 대표팀 감독인 강재원 감독이 한국팀과 맞부딪히는 것에 대해서 극히 말을 조심해야 하고, 당예서가 만약 이후에 금메달을 딸 경우 중국에서 어떠한 비난이 쏟아질지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현실 자체가 이미 ‘스포츠에는 페어 플레이 정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허울만 좋은 것임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이런 거대한 스포츠의 장은 국가라는 거대한 힘의 동원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올림픽이라는 행사는 당연하게도 각 국가들의 선전도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국가주의 따위와는 상관없는, 진정한 아마추어 정신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굳이 이러한 휘황찬란한 개막식 행사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왜 미국이 본국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조달해오고, 중국은 매연을 덜 내뿜기 위해 차량 2부제를 해야 할까요. 전세계의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스포츠를 즐기는 축제의 장이 필요하다면 그냥 공기 좋은 곳에 가서 NGO들의 후원을 받아 조촐하게 열면 될 것입니다. 왜 거기에서 거대해서 허무한 행사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요?

19세기 무렵, 유럽의 만국 박람회는 서로 자신의 국가가 뛰어난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음을 뽐내기 위한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피에르 쿠베르탱의 속사정이, 그리고 이후의 IOC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현재의 모습은 만국박람회의 모습과 그리 다를 바 없으니까요. 올림픽의 잘못이 아니라 올림픽을 바라보는 사람의 잘못이라는 말은 참 위험한 말입니다.

올림픽은 국민들에게는 꽤나 큰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별로 볼 일이 없었던 외국인들이 잔뜩 돌아다니며 얻게 되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나, 올림픽 이후로 더욱 활발해질 국제적 교류들로 인한 ‘세계화’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그 위에 있는 국가는 어떤가요. 국민이 바뀌면 국가도 바뀌게 마련이지만, 국가주의가 팽배할 때 맛을 보았던 올림픽 특수의 단맛을 본 국민들은 국가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애써 잊으려 하고, 국가와 국민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친자본적이게 됩니다. 특히, 올림픽 전후에 벌어지는 부동산 폭등과 졸부들의 돈잔치 따위의 기타 추레한 문제들은 언제나 고질적이죠.

올림픽은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국민들에게는 국제사회를 좀 더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과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손쉽게 취해버리게 만드는 일면도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는 월드컵 내내 불었던, ‘파시즘’적인 국가주의에 대해 한 번이라도 대대적인 반성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제가 그러한 지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박노자 같은 ‘외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한국인’에 의해서였습니다. 온통 ‘대~한민국’을 세련된 응원도구로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를 선전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앞으로 다민족 국가에 가깝게 변해갈 것입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는 지금과 비슷하게 가더라도, 지방의 경우는 꽤나 다민족에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신부를 맞이한 사람들의 2세, 3세가 늘어나는 속도는 한국의 기형적인 출산률 저하와 교차선을 그릴 테고, 어쩌면 이들 사이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대도시에만 살아온 한국의 시민들은 과연 그들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생각할까요, 아니면 귀화 선수와 다름 없는 시각으로 바라볼까요. 제가 보기에 이러한 문제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닙니다. 올림픽을 통해 강화된 중국의 국가주의는 소수민족 복장을 한 한족을 내세울 정도의 강한 민족주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이 과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도움이 될지 아니면 방해가 될지는, 제가 생각하기엔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아마추어 정신을 지닌 그 모두를 승리자로 보지 못하는지, 왜 올림픽을 통해서 국가 단위로 잘려져 규정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보다 국가 정체성으로 도배된 이미지가 되어 희생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정말로 스포츠를 즐기는 건지, 아니면 그저 국가의 대리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의 경쟁을 통해 국가경쟁의 한 단면을 보면서도 그것이 ‘현실세계의 냉혹함’과는 달리 좀 더 달콤한 ‘페어 플레이 정신의 스포츠’로 포장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비판적인 응원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혹자가 말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존재하고 미디어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림픽은 축제의 장이니 그저 한껏 즐기면 되는 것일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발전할 거라는 생각으로 굳이 애써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수준의 올림픽 인식으로 응원하면 되는 것일까요? 88 올림픽은 전두환이 어쩔 수 없이 국제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또한 이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계속하면서 결국 87항쟁과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냈습니다. 88년 당시의 올림픽을 대하는 태도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보다도 더 투쟁적이었고, 당면 문제에 대한 나름의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노무현의 당선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합니까? 그저 조금 맑아진 서울의 공기를 만끽하며 좋아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체진화는 절대 자기비판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88 올림픽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데 공헌을 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의 호들갑스러운 열기는 우리에게 어떠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폭에 따라서 달라질 일입니다. 그저 중국을 이겨야 한다는 미디어의 부추김에 넘어간다면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에게 아무런 시사점도 남겨주지 못할 겁니다.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상관 아주 많죠. 세계에서 가장 상관 많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조선족과 북쪽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와 역사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고,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한반도의 정세에 따라 이 부분은 향후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티벳이나 위구르 사태를 그저 해외토픽 정도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맘 편히 ‘한국 이겨라 중국 볍신들’ 하고 응원놀이 할 만큼 한가하지 못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변화할 중국의 영향권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에서 쉽게 쉽게 ‘한국의 승전보’ 따위로 도배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님에도, 우리는 베이징 올림픽에 생각보다 흠뻑 빠져있는 듯합니다. 역설적으로,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를 88 올림픽 정도로 되돌려놓고 싶어하는 그 누군가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판국이고, 오히려 그때의 상황보다도 더 나빠질 가능성조차 있다는 사실이 ‘올림픽의 국가주의’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일각에서 우리나라가 80년대로 되돌아간다는 자조섞인 이야기는, 그래서 20년 전과 지금의 올림픽을 생각하게 되면서 꽤나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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